아내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벌써 한달이 지났네요. 생각해보면 얼마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1년보다도 더 긴 시간이었습니다.

일이 일어난 때는 지난 5월 14일 오전 0시 40분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이었는데요. 주말을 앞에 두고 저는 야근을 하다가 훌쩍 12시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지금 퇴근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아내는 마침 텔레비전을 보는데 너무 재미있는데 혹시 자기가 먼저 잠들어도 화내지 말라는 말로 저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를 끊자 마자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머리가 갑자기 너무 아파! 겁이 날 정도로 아파. 119에 전화해서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까봐!"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놀란 저는 금방 택시 타고 갈테니 조금만 참으라 했습니다. 밤 12시 넘은 시각에 저도 없고 아이들도 놀랄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아내에게 바로 전화가 옵니다. 무척 힘이 든 목소리로 말합니다. "헉 헉 여보 119좀"

119에 전화해서 집주소를 알려주고 집에 빨리 갈 것으로 요청한 후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해보지만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고 나쁜 생각들이 듭니다. 방금 전 아내의 목소리가 마치 마지막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119에서 저에게 전화가 옵니다. 집에 도착했고 아내를 찾았는데 의식이 있지만 말은 못한다고 합니다. 일산 백병원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저역시도 일산 백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제가 조금 먼저 도착해서 아내를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엠블란스가 보이고 아내가 들것에 실려 나옵니다.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겁먹은 표정이 역력합니다. 손은 경련이 있었는지 뒤로 돌아가 있고 급기야 입에서는 거품이 나옵니다. 그리고 구토를 시작합니다.

응급실에서 다급하게 움직입니다. 경련이 심한 아내를 붙잡고 의사가 이름을 불러도 아내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손 발을 움직여 보라고 하지만 아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냥 토끼눈만 뜬 채 눈알만 희번덕 거릴 뿐입니다.

응급실에서 뇌CT를 촬열한 결과 뇌출혈이 있다고 전해줍니다. 원인은 아마도 뇌동맥류 같다고 하면서 확진하기 위해 혈관 조영술을 시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 일이 일어나기 며칠 전 아내는 저에게 두통을 호소해 왔습니다. 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 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병원에 가봐"했지만 아내를 병원에 보내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봐"라고 성의없는 대답만 한 것 뿐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자책감과 죄의식에 몸둘바를 둘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내는 두 번이나 뇌출혈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가 와서 아내가 뇌동맥류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이라며 상태를 설명해줍니다. 그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망치가 되어 저의 머리를 칩니다.

"환자분은 지금 지주막하 출혈입니다. 최소한 두 번이상 터졌으며 뇌출혈량이 대단히 많습니다. 굉장히 안 좋은 상태입니다. 가족들에게도 빨리 연락을 취하세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태보다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봤을 때 이미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환자분이 원래 말을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이미 언어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운동장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의사는 편안히 그리고 잔인하게 또 천천히 저에게 또박또박 얘기를 합니다.

뇌동맥류는 뇌의 동맥 한 부분이 기형적으로 얇아져서 꽈리처럼 부풀었다가 어느 순간 터지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혈관이 터지면 1/3은 즉사하고 1/3은 병원 후송과 치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설사 살아남는다 하더라고 그 후유증과 합병증이 들을수록 처참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아내에게 잘 못한 일, 아내가 잘 못되면 이후에 어떻게 일들을 처리해야 할지, 아내가 후유증이 커서 식물인간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하나같이 무서운 생각들 뿐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의식이 혼미하고 중환자실에 있지만 장모님과 어머님에게 이 안타까운 소식들을 전해야 합니다.

"장모님. 아이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지금 일산 백병원입니다. 지금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엄마. 애들 엄마가 위독해!. 지금 일산 백병원인데 엄마는 우리 집으로 가서 애들좀 봐줘!"

그렇게 두 분에게 황망한 소식을 전하니 마음 끝이 터질 듯 아파 옵니다.

아이들이 불쌍해 미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할지, 아이들의 슬픔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 지 도통 자신이 없습니다. 차 안에서 이런 현실이 너무 힘들어 소리치며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용기와 위로를 받기 위해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수많은 트친들이 맨션으로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복돋워주셨습니다.

그렇게 새벽이 옵니다. 일단 집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당분간 볼 수 없다고 전합니다. 초등 3학년 큰 아이가 핸드폰 영상으로 "엄마 파이팅! 빨리 나으세요!"라고 외칩니다. 고맙고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중환자실에 있던 아내가 눈을 뜨고 저에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내는 "칫솔, 치약"이라고 분명히 얘기해줍니다. 지난 밤에 토해서 입안이 찝찝한 것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싫었나 봅니다.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몇 시간 있다 뇌혈관 조영술을 하고 나서는 손도 움직이고 발도 조금 움직여 봅니다. 미소도 짓습니다. 병원에서도 예상치 못한 호전이라며 놀라워합니다.

아마도 전날 밤의 마비는 경련을 하면서 일어난 일시적인 증상인 것 같다며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장모님의 손을 잡고 "애들 엄마, 이제 살아났나 봅니다"하고 울고 웃으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내가 쓰러진 다음날 4시간에 걸쳐서 뇌출혈 재발을 위한 뇌동맥류 결찰술이라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머리 왼쪽을 여는 큰 수술입니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서는 시간이 도통 가지 않습니다. 한참이 지났거니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 5분이 지나고 또 한참을 지났거니 하고 시계를 보면 3분이 지나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긴 수술 끝에 아내는 수술실에서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이 아주 잘됐다며 흡족해 했습니다.

아내가 수술을 마치고 힘겹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아내는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더 있어야 했습니다. 수술 이틀 후부터는 죽이 나왔지만 제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면회시간이 아님에도 아침 저녁 저녁 밥이 나올 때는 옆에서 먹여 주어야만 했습니다. 조금씩 아내는 회복하더니 마침내 병원에 온지 일주일만에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아이들은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는게 사실이야?" "엄마는 언제 퇴원해? 엄마 언제 볼 수 있어?"하고 궁금해 했지만 엄마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일반 병실로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엄마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머리에는 피를 빼는 호스가 달려 있고 팔에 바늘을 꽂고 주렁주렁 약병을 매달고 있는데다가 머리 수술 후라 그런지 얼굴은 멍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엄마의 모습이 어색하고 안쓰러워서 그랬나 봅니다.

날이 갈수록 아내의 상태는 좋아졌습니다. 혼자서 대소변을 볼 수 있고 조심스럽게 병원 복도를 걸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드디어 쓰러진지 2주일만에 퇴원을 하게 됐습니다.

하루에도 비록 수십알의 약을 먹어야 하고 두통과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은 여전하지만 이제 아내는 살아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침에 산책을 하고 조심스럽게 피아노도 칠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은 휴대폰을 쓰면 머리가 아프다며 통화하기를 싫어하지만 지인들의 병문안에는 환한 웃음으로 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제는 빨래도 갤 줄 알고 은행일도 혼자서 볼 줄 알게 됐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날 5월 14일 이후 아내와 저에게는 새로운 삶이 추가가 된 것입니다. 이 덤으로 주어진 삶을 더욱 보람되고 알차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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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용사니케
[트윗터 파급력 실험 최종 결과]

3일 오후 퇴근길에 트윗터를 보니 청와대가 이번 선거에서 트위터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습니다.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파급력을 한번 확인해 보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런 글을 3일 오후 6시에 트윗에 올려봤습니다. 

"트위터 파급력 실험입니다. 전 파주사는 윤춘호입니다 울산에 사시는 윤춘호씨는 맨션 주시기 바랍니다. RT 부탁"


잠깐 사이에 수십개의 RT가 이어지고 그 RT 글을 읽는 순간에도 다시 열 몇 개의 RT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재미있다는 분, 결과가 알고 싶다는 분,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심지어 이 참에 나도 한번 찾아봐야겠다며 옛 군대 동기를 찾는 분도 계셨고 자신의 동명이인을 찾는 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정말 울산의 윤춘호가 나타나면 책 선물을 주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트윗터리안들은 과연 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셨습니다. 그리고 RT를 하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오늘(4일) 아침까지 이런 RT는 무려 850여개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오늘의 RT 순위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RT 1위는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쉽게도 울산의 윤춘호씨라는 분에게서는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다만 울산의 윤인호씨라는 분과 포항 윤춘호씨가 맨션을 주셨습니다.

서울의 윤춘호를 안다는 분도 맨션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패는 아닙니다. 어떤 분은 울산의 윤춘호를 직접 검색하셔서

울산에 본사를 둔 모 건설사의 대표가 윤춘호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분이 트윗을 하셔서 저에게 맨션을 주실까요? ㅎㅎ

저는 이번 실험을 통해 트윗터를 통한 소통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왕이면 성공 가능한 트윗 파급력 실험을 한번 더 해보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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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용사니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부모들에게
[좋은 아빠 어린 친구] 입학식 참석부터 학부모 네트워크 구성까지

이제 입학시즌이 곧 시작이다. 누구에게나 입학은 흥분과 기대가 앞서지만 특히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쩌면 아이보다 더 설레일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떠나 처음으로 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할 것인지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될 것이다. 이번에는 올해 처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 아빠를 위해 작은 팁 몇 가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 3개월이 중요하다

3월부터 5월까지가 앞으로 짧게는 1년의 생활, 길게는 6년을 좌우할 수 있다. 특히 학기 초에는 갖가지 행사가 이어진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모들의 첫 참관 수업, 봄 체육 대회,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행사가 이어진다.

가급적이면 아니 거의 절대적으로 부모의 참석이 필요한 행사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 아이도 학교에 입학하고 불안함과 스스로 대견함을 보여주고 싶은 때가 이 때다. 이런 시기에 엄마 아빠가 참석하지 못하면 아이가 크게 실망할 것이다.

   
  ▲ 사진=윤춘호

영서의 경우 첫 부모 참관 수업을 엄마 아빠가 둘 다 못 갔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이날 영서는 수업 내내 방해꾼이 되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이 도대체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수업을 방해할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영서는 참관 수업에 엄마 아빠 안 왔을 때가 가장 서운했다고 말한다.

부모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라

엄마, 아빠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 입학하고 2-3달이 지나면 아이의 등하원을 도와주면서 안면을 익히는 부모들이 생긴다. 이렇게 친해진 부모들은 교실 청소, 급식 등의 당번을 정하고 서로 아이의 학교의 학교 생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누구네 아이는 어떻네, 누구네는 공부를 어떻게 시키네 등등의 잡다하지만 많은 정보들이 오고 간다.

이런 엄마 아빠들의 모임을 좀 더 확대하고 소외되는 부모들이 없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엄마 아빠들의 모임이 잘 될 경우 나중에는 공동으로 월별로 아이들의 생일 잔치를 준비해 부담을 줄이고 아이들도 더 쉽게 친해지기도 한다.

알림장은 학교와의 소통 공간

1학년 아이의 학교 생활의 모든 것은 알림장에 있다. 매일 아이가 갖고 오는 알림장에는 단순히 숙제나 준비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아이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아이가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첨부해 보자. 선생님도 매일 아이의 알림장을 보고 있으니 현재 아이의 심리 상태나 건강상태 등을 적어 보낸다.

영서 같은 경우는 담임선생님이 매일 아이의 부족한 점이나 지금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을 알려와서 큰 도움이 됐다. 우리도 아이가 피곤해서 더 예민하다던지, 동생과의 사이가 좋아졌다던지 하는 생활 얘기를 전해 줬다. 나중에는 이 알림장을 모아도 아이의 성장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

교과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자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공부는 교과서가 전부다. 그러나 의외로 부모들의 아이의 교과서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 대신에 학습지나 학원의 보조 교재를 더 유심히 보는 부모가 있는 것이다.

교과서를 같이 보면 아이의 학습 수준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다. 수학의 경우 1학년은 큰 수, 작은 수의 비교, 수 세기, 2학기에는 올림 없는 덧셈에서부터 뺄셈의 개념 정리로 끝난다. 국어(읽기, 쓰기)는 대체로 아이들이 한글을 떼고 입학하는 수준을 감안하고 있다. 이런 교과서를 엄마 아빠가 같이 정독하고 진도를 함께 나간다면 아이의 학습 부담은 상당히 덜어질 것이다.

학생임을 인정하자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는 학생이다. 괜스럽게 몇 백원 아낀다고 버스타면서 "학교 아직 안다녀요"이러면 안된다. 아이가 상처 받고 혼란스러워 한다.

학생임을 인정하고 학생답게 대우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학생다운 일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용돈을 주지 않았다면 정기적으로 작은 용돈을 주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볼 때 일정 정도의 자율도 인정해 주자. 그리고 권리와 함께 의무도 지워줘야 한다. 청소나 설거지, 밥 차리기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동을 시킨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어느덧 듬직해진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글은 레디앙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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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용사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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